광고
120×300
광고
120×150
광고
120×300
광고
120×150
리더보드 영역1200×90상단 전체폭 배너 (1200×90)

정보·생활백과

지식 정보·생활백과 상세보기
정보·생활백과

일제강점기엔 군수, 해방 후엔 도지사와 장관 역임한 친일파

2026.04.25 16:33 0회

일제강점기엔 군수, 해방 후엔 도지사와 장관 역임한 친일파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이 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을 청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친일청산에 소극적이었으며 오히려 친일파들을 관료로 등용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이승만은 오히려 독립운동 세력을 탄압하였다. 1949년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친일파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겪으면서 다수의 대한제국 관료들이 저항 없이 일제의 관료가 되었듯이, 1945년 8월 15일 또한 자연스럽게 친일 관료들이 대한민국 정부의 관료가 되었다. 그 누구 하나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상을 잘 나타내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친일파 김홍식(金弘植, 1901~1974)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수를 하고, 해방 이후에는 장관까지 오른 김홍식의 행적과 지금까지 부천군수로서 알려지지 않았던 친일 행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김홍식의 일생 김홍식은 충남 아산 출생으로 1927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에 졸업하였다. 1932년 9월에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34년 11월에는 일본 고등문관시험인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그 이듬해인 1935년 10월에는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행정관료가 된 김홍식은 1939년 7월 평남 양덕군수, 1941년 3월 평남 개천군수를 거쳐 그리고 1943년 3월 부천군수가 되었다. 양덕군수로 있으면서 친일잡지인 <내선일체>를 발간하는 내선일체실천사 평안남도지사의 고문을 지냈다. 전체 내용보기

📎 원문 보기

여수포털뉴스